사람이 얼마나 세월을 거듭하고서야 무릇 機微를 알아 편안한 경지에 들 수 있을까.
붓 한 자루를 제대로 이기지 못하는 허약함 속에 부질없이 年齒만 쉰 중반을 넘기는 마음이 서늘하다. 운명적으로 글씨를 쓴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덧 나의 일상이 된 글씨쓰기와 늘 갈등하면서 나름의 예술적 영역을 究明하는 일에 고민하였던 지나간 시간을 이쯤에서 되돌아보고자 한다.
서예가 무릇 글씨의 아름다움을 超極化하는 예술일진데 그 아름다움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至高의 필법인가. 음양의 조화인가. 자연의 재현인가. 인격의 發揚인가.
文氣는 무엇에서 비롯하여 향기로 피어나는가.
벼루 열 개가 구멍이 나고 붓 씻을 물로 연못을 까맣게 물들이며 從意隨筆하나. 서예가 그런 것인가. 이런 미혹들이 새로움에 대한 과제와 더불어 늘 내 어깨를 누른다.
예술적 행위를 통하여 나타나는 다양성의 발휘는 창작을 전제로 하는 예술의 본령에서 지극히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형태적인 것으로 轉用되어 다양성, 다채성에 의한 기교적 발작으로 흐르므로 해서 진실미 즉 예술적 승화를 이루지 못한 채 일종의 허황한 멋에 치우친다면 섬뜩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유섭 선생이 지적 한 바 ‘군짓’이 되고 말 것 같은 이 허황된 오류를 나는 경계한다.
또한, 개인의 美論的 思惟의 깊이에 따라 그 결과는 극명하게 모습을 달리할 것인 즉, 이에 대한 나의 심미안과 문학적 소양에 대해 나는 아직 자신하지 못 하고 있다.
그래서 막무가내의 浮浪性과 허황된 자기과시의 포장을 걷어내면 이내 드러나는 변화의 僞善을 거북해 하며, 언제부터 인지도 모르게 늘 그 모습으로 있어 왔던 자연스러움에 나는 더 愛着한다. 이것이 전통에 바탕을 둔 서예미학을 기본조건으로 하여 나의 작품이 진행되는 이유이다.
서예작품은 낱글자로 시작하여 行을 이루어 가고 그 행들이 모여서 한 작품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낱자로부터 행의 관계유지는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한 요건이다.
낱자와 행간의 소통은 전체 작품의 조화를 이끄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낱자와 행의 潔癖은 지루한 나열로서 오히려 전체를 경직시켜 조화를 방해한다.
한문서예에서 행초서 작품이 다른 서체에서 보다 작가의 내면과 예술성을 표현하는데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용이한 것은 바로 글자끼리의 소통과 행간의 소통이 활발하여 전체적 조화를 이끌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 행서가 갖는 유연성과 소통의 생동감을 나의 한글 고체 작품에서 나타내 보고자 하였다. 이것이 부정현의 字와 行을 自發시켜 자연스런 조화를 추구하려는 내 작품의 형식성이다.
미완의 낱자를 소통시켜 낱자의 조화를 통해 행의 변화를 이끌고 부정형의 행을 서로 소통시켜 전체의 조화를 완성해 나가는 일은 내 작업의 중요한 틀로서, 앞으로도 이러한 미완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통해 나의 서예성과 정신성을 발현해 보고자 한다. 자연미의 구현은 내 작업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과제이다. 부석사 석축의 자연스런 어우러짐에 눈길 빼앗기고, 달빛에 부서지던 하얀 박꽃에 마음 설레며 나는 내 글씨의 모습도 이러하기를 꿈꾼다. 바라건 데 편향성을 거부한 和而不同의 미감으로 質朴과 澹泊의 寂照美를 추구하고 싶다.
새마을호 기차를 타고 좌석을 뒤로 돌려놓고 앉아 창밖으로 KTX가 내닫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해체와 혼돈이 범람하는 금속성의 전자시대에 꼴지게 지고 소를 따르는 농부의 걸음을 추억한다.
뒷걸음으로도 나아 갈 수 있는 여유를 즐기며, 나는 서예가로서의 나만의 길을 가고자 한다. 세상의 많은 이가 한마디씩 보태고 덧칠한 필법과 古今名家가 남겨놓은 俊秀한 聖跡에도 나는 눈길과 마음을 온통 빼앗기지 않으리라.
나는 나의 길을 갈 뿐이며, 내 사람의 됨만큼 내 글씨도 그러하리라는 점을 알기에 無遊分外, 분수 밖에서 방황하지 않을 것이다.
평생 수레바퀴를 깎은 이도 알맞게 구멍을 내는 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듯 지극한 도가 문자에 있지 않음은 자명한 이치 아닌가. 나의 눈을 맑게 씻고 싶은 마음속에 대바람을 일으킬 밖에 달리 무엇으로 나를 이롭게 하리.
나는 모든 것에서 늦다. 세상의 기미를 어렴풋이나마 느낀 것도 얼마 전의 일이고, 공부의 시작과 나아감도 늦으며 그것의 이룸은 더욱 늦어질 것으로 안다. 언제나 다시 길을 떠나는 새벽의 의욕으로, 느린 대로 쉬지 않고 나아가는 외에 달리 길이 없으리라,
七顚八倒, 지나온 것보다 가야할 길이 먼 나의 서예 여정에서 무수히 쓰러지고 넘어지게 될 것을 예감하며, 김광섭 시인의 글을 올려 가슴에 새긴다.
貧賤한 묏골에서
하나의 돌멩이로 태어나서
커다란 바위가 되지 못할지라도
또한
하나의 시내로서 흘러서
넓은 바다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그대는 無限에 飛翔하는 瞬間을 가지라.
江湖諸賢 前에 拙作을 내이며 감히 叱正을 바란다.